불황의 시대에 경차 같은 옵션, 넷탑
넷탑은 지난 해 인텔이 아톰을 내놓으면서 넷북과 함께 소개했던 새로운 PC 범주였습니다. 넷탑은 넷북과 마찬가지로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성능을 가진 초소형, 초저가, 초저전력 PC의 개념입니다. 프로세서나 운영체제를 떠나 전기를 덜 쓰면서 싼데다 작으면서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을 수행하는 데 모자라지 않는, 그런대로 성능도 나오는 미니 데스크톱 PC인 것이지요.
넷탑 이전의 배어본 PC
지금은 넷탑이라는 범주로 통칭해 부르고는 있지만, 이런 미니 데스크톱 형태의 PC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요. 넷북도 앞서 선보인 초저가(Ultra low cost) 노트북이 그 유사한 모델이었듯이 넷탑도 그 이전에 유사한 형태가 있었습니다. 흔히 '배어본'(barebone)이라 부르던 형태의 PC입니다. 베어본과 넷탑은 정말 다르게 생각할 수 없는 제품이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배어본은 뼈대만 갖춘 텅빈 PC입니다. 모든 부품을 다 넣어서 파는 게 아니라 작은 PC 케이스에 메인보드와 광학 드라이브, 전원 공급 장치, 각종 입출력 단자만을 담은 반제품 PC였지요. CPU나 램, 하드디스크 등은 이용자가 직접 구매해 꽂는 형태였습니다. 물론 운영체제도 이용자가 직접 깔아야 했고요. 반 완제품이자 반 조립형 PC인 셈이었습니다.
이용자가 부품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메인보드에 맞는 것을 써야 했으므로 선택이 폭이 아주 넓은 편은 아니었지요. 크기가 케이스 안에 넣기 위해 그보다 작은 메인보드를 넣어야 하는 데다 그 안에 많은 부품까지 챙겨넣으려면 방열팬이나 그 밖의 부품들도 최소화할 수밖에 없던 터라 원하는 부품으로 채우기도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배어본은 강력한 성능보다 공간이 좁은 곳이나 멀티미디어 PC로서 기능을 해왔습니다.
여전히 많은 배어본 PC들이 팔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종전 CPU를 따로 사서 꽂는 완전 조립형과 함께 CPU를 메인보드에 넣어버린 CPU 일체형 배어본 PC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초기 배어본(사진 맨 위)은 다소 투박했으니 시간이 흐를 수록 디자인과 기능, 크기에서 다양성을 가진 배어본이 나오고 있다.
완성된 형태의 미니 PC
배어본이 골격만 갖춘 반제품, 반조립 제품이라면 미니 PC는 완제품입니다. CPU와 램, 저장 장치, 운영 체제 등 배어본에서 빼놓았던 것을 다 넣은 것이지요. 제품 형태가 완제품이다보니 부품의 추가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더 작고 슬림하게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렇다고 기능이 빠진 것도 아니고 디자인도 훨씬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오히려 맥 미니나 이와 유사한 형태의 미니 컴퓨터들을 보면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수행하는 데 결코 모자라는 인상을 전혀 주지 않습니다. 종전 데스크톱에서 모바일 프로세서로 바뀌었을 뿐이므로 여느 노트북과 거의 비슷한 성능을 냈습니다.

크기를 줄인 맥북과 델 스튜디오 시리즈와 미니 PC들은 성능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미니 PC의 성능과 가격 함께 내린 넷탑
미니 PC는 되도록 성능을 유지한 상태로 크기를 줄인 것이지만, 가격만큼은 낮추지 못했습니다.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비싼 부품들을 그대로 가져다 쓴 탓입니다. 물론 종전 데스크톱 PC보다는 쌌지만, 그래도 성능을 그대로 가져가려는 욕심을 부린 터라 가격을 낮추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셈이죠.
그 성능과 가격의 경계를 허문 것이 넷탑입니다. 앞서 소개한 대로 넷탑은 웹기반 애플리케이션을 수행할 수 있는 성능의 프로세서와 칩셋을 값싸게 대량 생산해 공급하는 여건을 만듦으로써 매우 값싼 미니 데스크톱 PC를 만들고 인텔이 이를 넷탑이라는 범주로 부르자고 제안하기에 이릅니다. 운영체제나 부품을 콕 찝어서 말하지 않고
당연한 이야기일텐데 인텔은 이러한 넷탑의 범주를 발표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프로세서 패키지를 선보입니다. 이것도 아톰이지만, 넷북용 아톰과 차이가 있습니다. 인텔은 선보였던 넷탑용 초소형 메인 보드를 만들 수 있는 45nm CPU 패키지는 종전 데스크탑 CPU의 크기인 가로/세로 37.5mm보다 70% 줄어든 22mm짜리 CPU는 10W 미만의 TDP(열 설계 전력)에 하이퍼스레딩을 포함한 1.6GHz 클럭의 싱글(아톰 230, 4W)/듀얼(아톰 330, 8W) 코어 CPU입니다.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수행하는 성능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720P HD 동영상까지 재생하는, 캐주얼 3D 게임도 돌아가는 수준의 성능이므로 웹 애플리케이션 외에도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수행이 가능합니다. 최근에는 넷탑의 약해빠진 그래픽 기능을 보완하는 엔비디아 이온 같은 플랫폼이 등장 블루레이(1080P) 재생은 물론 3D 게임 성능을 크게 끌어올린 덕에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성능을 내렸다고는 해도 일상적인 작업에는 무리 없는 수준인 게지요.
그렇다고 넷탑이 일반 데스크탑보다 성능에서 우위를 가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넷탑은 적은 전력을 소비하고 적은 열을 발생시켜 적은 소음을 만드는 초소형 PC의 강점을 가졌을 뿐 처리 성능에서 데스크탑을 넘어서는 것은 아닙니다. 이점은 오해 없으시길.

넷탑의 시장성은 있을까?
초저가 노트북 열풍을 이끈 넷북에 밀려 넷탑은 지난 한 해 주목받지 못하는 신세였습니다. 대부분의 관심이 노트북보다 상대적으로 싸면서 인터넷 애플리케이션과 동영상 재생 등에 무리 없던 넷북쪽으로 쏠렸기 때문이지요. 넷북이나 넷탑 모두 세컨 PC의 개념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했지만, 값싸고 휴대성 좋은 메인 노트북을 찾았던 수요가 훨씬 더 많았던 터라 넷북이 먼저 시장을 열었던 셈입니다. 그래도 넷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종종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존재감이 살아나는 듯합니다.
물론 많은 업체가 도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넷북 때처럼 몇몇 대만 업체가 이런저런 형태의 제품을 출시하고 '간을 보는 중'이지요. 그래도 디스플레이 리서치는 올해 넷탑이 지난해보다 80% 성장한 600만 대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넷북의 성장세에 비하면 턱없는 수준이지만, 소비자들도 서서히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성능, 디자인과 더불어 사용성을 개선한 제품이 서서히 시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 것이지요.

그러나 넷탑이 시장성을 갖추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마음입니다. 데스크탑을 대체하지는 않아도 보조적인 수단의 역할은 넷북이 차지했고, 독립된 PC로서 역할을 하려니 되도록 싼값에 강력한 성능을 원하는 이들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진 못한 상황입니다. 물론 가격대비 효율면에서는 넷탑이 갖는 장점은 큽니다만, 지금 어려운 경제를 감안해 지출을 줄이려는 상황에서 구매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일시적인 옵션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경소형차 소비가 늘고, 좋아지면 중형차 소비가 느는 것 같은 현상이 넷탑과 데스크탑 사이에서도 일어날 만한 일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 넷탑이 넷북만큼 성장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국내에도 곧 수입 넷탑들이 소개된다고 하는데 이 PC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꽤 궁금합니다. 넷북에 비하면 소비자들의 관심이 그다지 많지 상황은 아니라는 점도 그렇고 넷북과 달리 데스크탑은 성능에 대한 모종의 낭만이 있는 점으로 짐작컨테, 그 만족감을 채우는 데 한계가 있고, 여전히 높은 환율로 인해 수입 넷탑의 가격이 데스크탑과 맞먹을 수 있는 점 등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낮은 관심, 비싼 수입가, 고만고만한 성능이라는 삼중고를 뚫고 쓰는 데 불편 없는 저전력 PC라는 강점이 소비자들에게 먹힐지 두고 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