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칼럼] 터보 버튼을 부활시킬 수 없을까?

요즘 이 드라마를 안본 세대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과거 <전격 Z작전> 같은 인기가 많던 고전 드라마에서 터보 버튼을 누르자마자 쏜살같이 튀어나가던 키트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터보 버튼을 눌러 달아나거나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구해주러 달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키트 자동차 하나쯤 갖고 싶은 마음이 들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키트가 스스로 터보 기능을 작동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주인공 마이클이 그 버튼을 눌렀다는 것입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차를 사면 언제나 저런 터보 버튼을 한 번 눌러보겠다는 환상을 가졌던 이가 많았을 텐데 정작 차를 사면 그런 터보 버튼은 없죠. ^^;
뜬금없이 터보 버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는 아닙니다. 단지 터보 버튼이 주었던 환상 때문이죠. 내가 필요할 때 이 버튼을 누르면 더 빠르게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 말입니다. 물론 실제로 터보 버튼을 누르면 기계는 그 이전보다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는 게 사실이지만, 이용자는 그것을 누르기 전과 후의 마음 또는 믿음은 확연히 다릅니다. 작업의 처리는 분명 기계가 하는 것인데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좀더 긍정적으로 바꾸는 보이지 않는 기능이 터보 버튼에 있는 것이죠.

저는 그 터보 버튼이 요즘 출시되는 PC에 달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니,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해야겠네요. 옛날 PC에는 터보 버튼이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펜티엄 이후부터 PC를 쓰는 이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XT 시절부터 PC를 쓰던 이들은 터보 버튼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에 대한 추억도 남다를 것입니다. 터보 버튼을 누르기 전과 누른 뒤의 DIR을 입력했을 때 파일 목록이 올라가는 속도만 보고도 감탄했던 때였고, 터보 버튼만 누르면 게임이 팍팍 돌아가던 그 때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오버클러킹에 대한 정보도 없고 정보나 지식을 챙기지 않아도 이용자는 버튼 한 번만 누르는 것으로 편하게 더 빠른 속도를 만끽할 수 있던 그 때는 누구나 터보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더 빠른 PC를 쓴다는 환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터보 버튼이 없습니다. 터보 버튼을 통해 누구나 누릴 수 있었던 성능 향상은 사라지고 언제나 처리 성능이 좋은 똑똑한 PC만 있습니다. 작업량이 많으면 CPU가 더 많이 일하고 작업량이 적으면 CPU도 쉬면서 전기료도 아껴준답니다. CPU가 이용자의 작업 환경에 따라서 그 능력을 조절할 줄 안다니 정말 똑똑해진 것은 좋은 일이죠.

어쩌면 참 좋아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문제는 이런 CPU가 들어 있는 PC를 쓰는 이용자에게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성능과 똑똑한 기능을 가진 CPU가 들어 있는 것 까지는 좋지만, 전원과 리셋 버튼을 빼면 이 녀석을 통제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수단이 없거든요. 더구나 PC의 성능이라는 게 CPU 이상의 것이 나오기 힘드니 제조사 입장에서는 조금 더 나은 성능을 소비자에게 주려는 노력을 거의 안합니다. 당연히 성능적인 부분에서 그 PC의 개성은 조금도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소비자는 무엇을 사더라도 같은 성능일 수밖에 없으니 결국 겉모양이나 부가장치의 제원을 보고 좀더 싼 제품을 사는 것이 그야말로 장땡입니다.
그러니 요즘 제조사 PC에서 느껴지는 감동이라는 게 없습니다. 여러 부품들을 모아서 찍어내듯 PC를 만들어내는 제조사만이 단가 경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말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 PC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성능적으로 차별화한 PC는 있지만, 그것 역시 가장 비싼 부품만 모아 놓은 것 이상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정말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은 기술력 가진 업체가 지금 존재하는 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PC 업계에 터보 버튼을 부활시켜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대량 생산은 대량 생산대로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이용자가 인지할 수 있는 PC의 기술력 또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터보 버튼은 분명 한계까지는 아니어도 여유가 되는 한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고, 그 기술을 찾아내 적용한 PC가 있다면 성능적 차별성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똑같은 제원을 쓴 다른 PC와 같은 가격에 판다면 차별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용자는 같은 값의 PC로 필요한 때 더 나은 성능을 향상할 수 있는 선택권을 얻게 됩니다. 앞서 "내가 필요할 때 이 버튼을 누르면 더 빠르게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이라는 터보 버튼의 숨겨진 의미까지 더한다면 그 PC의 경쟁력은 다른 PC들을 압도할 수 있겠죠.
물론 현실적, 기술적으로 터보 버튼을 추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XT나 AT 시절의 터보 버튼을 쓰던 때와 달리 지금의 오버클러킹은 더 복잡해졌고, 각각의 이해 당사자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 더 많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부품을 쓰고 성능의 개성이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PC만을 내놓고 있는 현재의 시장 상황이 너무 재미가 없습니다. 지금 PC 시장이 잘 나간다고 하지만, 결국 의미 없는 경쟁만 한 채 재미없는 제품만 드글대는 PC 시장을 소비자는 떠날 것입니다. 터보 버튼을 누를 수 있던 키트를 소유하고픈 로망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PC 업계도 그런 로망을 안길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는 데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터보 버튼은 그러한 장치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