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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판 안드로이드폰, 그 험난한 여정
어제 두 개의 굵직한 IT 행사가 미국에서 열렸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드(build)와 인텔 개발자 포럼(IDF)였지요. 모두 개발자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이 행사들이 모두 차세대 제품의 방향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개발자 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행사에서 주목도가 높았던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빌드였는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MS가 차세대 윈도 8의 특징과 개발 환경을 공개하면서 그 쪽에 더 관심이 집중된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인텔 개발자 포럼의 기조 연설에도 꽤 비중이 큰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일반 소비자 관점에서는 크게 두 가지였지요. 울트라북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저전력 프로세서와 구글 안드로이드의 협력. 아마 지금 시점에서는 차세대 프로세서보다 구글의 협력에 대한 이야기에 더 솔깃할 수밖에 없겠네요.
드디어 선보인 x86 안드로이드폰
인텔이 꾸준하게 모바일 시장을 두드려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최근의 일로 기억하겠지만, 인텔은 2007년 MID(Mobile Internet Device)라는 컨셉(인텔, UMPC보다 한단계 낮은 MID 발표?)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휴대 모바일 장치의 컨셉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영역 확장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스마트폰 시장의 급성장과 반대로 MID를 내세운 인텔의 지배력을 약해집니다. MID 이후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려던 인텔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 것이지요. 우여곡절 끝에 2010년 CES에서 무어스타운 기반 MID인 LG GW990을 공개했지만, 그해 5월 이 제품마저 개발이 중단(HP 슬레이트와 LG GW990의 개발 포기, MS와 인텔의 난감함)되면서 인텔의 모바일 사업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인텔은 ARM 진영에 비해 프로세서 파워마 좋았지 전력량이나 제품 단가, 칩셋 구성도 등 모든 면에서 밀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IDF에서 인텔 CEO 폴 오텔리니가 막판 의미있는 제품 하나를 들고 무대에 섰습니다. x86으로 일컬어지는 인텔 아키텍처 안드로이드폰이었지요. 32nm 기반 메드필드(MedField)를 넣은 프로토타입 안드로이드폰이었습니다. 화면 상에서 켜지고 꺼지는 것을 보니 실제 작동하는 모델로 보이더군요. 폴 오텔리니는 이 프로토타입과 같은 형태의 스마트폰의 출시 시기를 2012년이라고 전한 뒤 안드로이드 총 책임자인 앤디루빈을 무대로 초대했습니다. 데이터 센터, 구글 TV, 크롬 OS 등 그동안 구글과 지속적으로 협력했던 결과가 드디어 스마트폰까지 오게 됐음을 알리는 순간이었지요.
인텔과 구글의 만남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인텔이 이제야 스마트폰 시장에 맞는 저전력 고성능 원칩 솔루션을 내놨다는 것과 가장 강력한 스마트폰 운영체제의 지원을 받게 됐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이 두 가지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제조사들의 관심을 겨우 끌어낼 만한 요소라는 점인데, 무엇보다 구글이 x86에 맞게 안드로이드를 부분적으로 손질해 배포한다는 점에서 프로세서를 뺀 운영체제 생태계의 가장 큰 취약점 하나를 해결한 셈이 됐습니다. 물론 메드필드가 ARM 대비 얼마나 더 나은 저전력 프로세서인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상품화가 가능한 상황에 이른 것은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뜻대로 되기 힘든 여정의 시작
그런데 이 협력의 결과를 예측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인텔과 구글이 뭉쳤다고 삼성이나 HTC 같은 제조사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제조사가 만들었다고 유통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인텔과 구글의 협력이 갖는 상징성은 크지만, 그것이 시장에서 실제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특히 구글보다는 인텔의 마음이 급할 텐데요. 모바일 시장에서 ARM 대비 저전력 성능과 공급 단가의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경쟁 우위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니까요.
결국 인텔은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제조사가 인텔 프로세서를 넣은 스마트폰을 만들도록 유도해야 하는 데, 좋은 제품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낮은 단가 싸움은 불가능할 겁니다. 아마 비슷한 수준의 단가를 매겨 놓고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 프로그램을 이용해 제조사를 꼬뜨기겠지요.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인텔은 실리콘 업체 가운데 가장 마케팅을 잘 하는 기업입니다. 인텔 인사이드 마크가 붙은 PC를 사라는 마케팅으로 'PC=인텔'이라는 공식을 굳혀 놓은 것이 지금까지 통하는 것을 보면 그 마케팅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이해가 되겠지요. 제조사를 지원하는 마케팅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스마트폰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일단 좋은 출발로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그 마케팅을 제조사가 아닌 이통 시장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고 예전 PC 사업보다 훨씬 큰 부담이 작용하게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했는데도 시장에서 안 움직이면 정말 골치 아파집니다. 안 만들어도 골치지만, 누가 만드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구글에 중요한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모토롤라지요. 지금 모토로라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만, 잘 하면 모토롤라의 애매한 쓰임새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기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협력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모토롤라를 활용하려는 구글의 의도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는 모토롤라의 합병이 잘 마무리된다는 가정의 이야기일 뿐입니다만, 어찌됐든 변수가 여럿 입니다. 변수가 많다는 것은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분명한 한 가지는 스마트폰 분야에 대한 인텔과 구글의 협력이 모든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텔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여정을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